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빈슨 크루소 (문단 편집) === 로빈슨 크루소 === 위에서 설명한 대로 무인도에서 외롭게 혼자 산 사나이. 본래는 [[영국]]의 [[중산층]] 가정의 셋째 아들이다. 모험을 원하는 로빈슨에게 부친이 중산층의 평범한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 설명하며 달래는 장면이 있다. 덧붙이자면 [[아버지]]는 [[브레멘]]에서 [[킹스턴어폰헐]]을 거쳐 [[요크#s-1|요크]]에 온 [[상인]]이고, '로빈슨'은 어머니 [[성씨]]다. 아버지 성씨 크로이츠네어(Kreutznaer)를 [[영어]]식으로 부르다 보니 '크루소(Crusoe)'가 됐다. 이것도 깨알같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한자동맹]]이나 [[스틸야드]] 등에도 나오듯이 중세 성기 상업과 무역의 발전 속에서 북해 교역의 중심지는 북독일 도시들과 그곳 출신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네덜란드나 영국 등지에도 진출하여 활동하였고, 그 영향으로 꽤 오랜 세월 영국 경제계에 북독일 출신자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었다. 심지어 로빈슨의 부친 출신지인 브레멘은 한자동맹을 창립한 원년멤버이고, 오늘날에도 공식적인 명칭은 "자유 한자도시 브레멘(Freie Hansestadt Bremen)"이다. 로빈슨은 셋째 아들이지만 부친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아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여건이었다. 위의 두 형이 없었기때문. 큰 형은 전쟁터에서 전사했고, 둘째 형은 집을 나가서 실종되었던 것이다. 중세 동안 서유럽에서는 분할상속제에서 장자상속제로 변화하였는데,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11세기 [[노르만 왕조]] 시대에도 [[잉글랜드 왕국]]과 [[노르망디 공국]]의 분할상속에 관하여 장자인 로베르에게는 가문의 상속재산인 노르망디를 남기고 차자인 [[윌리엄 2세]]에게는 새 취득재산인 잉글랜드를 남기는 등 그 과도기적 모습이 드러난다. 이러한 변화는 중세가 끝나갈 즈음에는 확실히 정착하였고, 그래서 18세기 당시 영국은 이미 큰아들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주는 게 전통이었으며, 다른 유럽대륙 국가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즉, 차남 이하 아들은 성인이 되면 각자 알아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이건 사실 빈곤하기 그지없던 [[북유럽]] [[노르드인]] [[바이킹]]의 전통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로빈슨은 정당하게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젊은 혈기에 모험을 해보려고 바다로 나간다. 첫 항해(고향 요크에서 런던까지 가는 영국 연안항해) 때 폭풍우에 휘말려 죽을 뻔했지만, 둘째 항해(런던에서 아프리카 왕복으로 원주민들과 잡화-사금의 물물교환) 땐 [[나름]]의 성공을 거두어 세 번째 항해에 나섰는데, 무어 [[해적]]의 습격을 받아 해적 [[선장]]의 노예가 되어 고생하다가 간신히 탈출하고는 [[포르투갈]] 선박에 구조되어 [[브라질]]에서 농장주로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슬슬 농장생활에 지루함을 느끼던 차에 이웃 농장주들과 합자로 노예무역을 하게 되었는데, 일종의 관리감독자로 따라나섰다가 폭풍으로 배가 난파하면서 무인도에 홀로 표류하게 된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다보니 [[농사]], [[염소]]치기, 옷 만들기, 토기 굽기 등 온갖 일에 능숙해졌고, 덤으로 신앙심도 깊어졌다. 프라이데이를 구조해 노예 겸 친구로 같이 지내다가 반란을 일으킨 영국 상선의 선장의 편을 들어 반란을 진압하였고, 그 덕분에 영국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